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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일화:그때 그런 일이 있었네 - 내 삶의 즐거움, 나의 비타민 : 5
201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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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모음집]나에게 인생을 묻는다. - 일화:그때 그런 일이 있었네 - 내 삶의 즐거움, 나의 비타민 : 5

Ⅱ. 일화 : 그때 그런 일이 있었네 

 

  

삶의 여백이 주는 행복

최교상 | 인천광역시율목도서관_인천

 

 

중년에 시작한 취미생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나이가 들어 할 수 없게 되자, 조금씩 해왔던 주식
투자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대우증권 여의
도 본사에서 실시하는 홈트레이딩 교육을 받았다. 2주일간의 투자자교육에
참석하며 여성단체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투자자들과 채팅을 통해 정보 교
환도 하고 홈트레이딩을 하면서 전국 투자자교육 1기에서 만난 박영식, 임정
숙(현 아키아연대대표)와 서울 여성단체 아키아연대(아줌마가 키우는 아줌마
연대)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한때는 열심히 활동했지만 서울까지
다니며 활동하는 것이 그림 그리는 시간에 지장이 되어 활동을 줄이고 요즘
은 일 년에 몇 번씩 행사에만 참석하고 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던 나는 보건소에서 실시하던 중년 건강교실에 다니며
그동안 못했던 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때 난생 처음 건강수기 “열심히 살다보
니 행복해요”를 써서 상과 함께 부상으로 건강 검진권을 받아 남편에게 선물
했다. 아무튼 이렇게 활동하다보니 중구에 사는 많은 중년 여성들을 알게 되
었고 생활체육 여성위원회 팀장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중구 백여 명의 여성
들과 매달 1회 모여 5년간 운동을 했고 매년 1회 체육대회도 개최했다. 지금
은 지원금이 끊겨 잠시 쉬고 있지만 임원들끼리 하는 모임은 아직 갖고 있다.
이렇게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하나 둘 활동범위도 넓어져 갔다. 2005
년부터 틈틈이 하던 녹색교통봉사단을 시작으로 자원봉사센터 월디기자단을
거쳐 지금은 안전모니터봉사단으로 활동을 하고 있고 2014년 인천 아시아 경
기대회 때는 자원봉사와 함께 성화 봉송도 하며 잊지 못할 추억도 남겼다. 지
금까지 1800여 시간 넘는 봉사를 해 오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고, 뿌듯한 보람
도 많이 느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자서전에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다.
집안에서 살림만 하던 내가 문밖에 나왔을 때 정말 그랬다.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너무너무 많았다.
하지만 봉사도 좋지만 뭔가 나만의 개성이 담긴 의미 있는 일, 나이가 들어
서도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고 싶었다. 정희 친구와 여성회관에 다니면서
채색화를 했는데 문화센터는 몇 년 다녔어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
다. 여러 명이 한데 모여서 수업을 하다 보니 시간도 부족하지만 분위기도 산
만하고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삼영 선생님의 화실에 다니며 수채
화부터 차근차근 배우다가, 문득 우리나라 전통 수묵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수묵화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싫었고 현대적인 선 구성법으로
멋지게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지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
다. 작품을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고심도 많이 한다. 어느 땐 “내가 왜
늦게 되지도 않는 그림을 그리느라고 스트레스를 받나. 재미있는 일들도 많
은데”라고 넋두리를 하면 선생님께서는 “그래, 그만두고 재미난 일 해” 하신
다. 그럼 나는 “지금까지 해온 세월이 얼만데 억울해서 못 그만두지요”라고 대
답한다.
다른 그림도 어렵지만 한국화는 재료 특성상 선을 잘못 쓰면 수정을 할 수가
없다. 반면 맘먹은 대로 작품이 잘 나오면 큰 성취감도 맛볼 수 있어서 좋다.


2010년 나는 한국화가로 정식 입문했다
나는 2002년부터 인천사생회에 가입해 한 달에 두 번은 야외사생을 가고,
여름과 겨울방학에는 장거리 연수도 다니면서 사계절 따라 아름답게 변하는
자연의 색상과 모습을 스케치도 하고 작품으로 완성해 왔다.
한국미술협회에 2010년에 가입해 정식으로 화가 입문 과정도 거쳤다. 한국
미협회원이 되려면 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은 9년을 쉬지 않고 단체전에 출품
해서 서류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뒤부터 지금까지 내게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다음으
로 중요한 문제는 화실에서 작업을 하는 일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화, 목요
일은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화실에 가서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한국서화협
회에서도 운영위원으로 사무 실명함까지 찍어줬다. 나름 조금씩 인정을 받고
있다.
그동안 나는 개인전 4번을 했고 단체전은 123회 참여했다. 그 중에는 해외
초청전도 여러 번 있었다. 하와이 교류전, 중국 심양 한화회전에 참가했고 인
도네시아 반둥전시에 초대받아 참가했다. 단순한 여행만이 아니고 초대받아
전시회 오픈식에도 참가해서 다른 나라 회원들의 작품 감상도 하고 초청국가
회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여행도 하면서 스케치도 함께 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그림으로 소통하며 뿌듯함을 느꼈다. 비록 부족한 작품이지만 세계 곳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록 속의 내 작품과 만나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기고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남편을 비롯해서 아이들이 화가가 된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흐
뭇해하며 지지해 주는 것이 큰 보람이다. 첫 개인전을 했을 때 작은 아들 진호
는 도록을 정성스레 포장해서 직장 동료들에게 나눠줬는데, “그림이 너무 좋
다. 너의 어머님 화가시냐? 어머님 정말 멋지시다” 라고 했다며 좋아했다.
모든 예술이 그렇겠지만 그림도 깊이를 알아가면서 창작을 하려고 하면, 하
면 할수록 어렵다. 느지막이 시작한 일이니 지나친 욕심을 부리기보다 누가
뭐라 하든 말든 내가 만족하는 작품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며 하루하루 곱게
나이가 들어갔으면 한다.
“조석원 씨, 나의 동반자이자 열정적인 나의 조력자로 지금까지 함께 해줘
서 너무너무 고맙고 사랑합니다.”
지금처럼 우리 가족 모두 서로 사랑하며 건강하게 각자 좋아하는 일들을 하
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소망한다.

 


▶ 이 글은 최교상 님의 자서전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며,
전문은 홈페이지(www.libraryonroad.kr)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홈페이지 공지 및 보도-홍보에서 원본파일을 다운하실 수 있습니다.(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