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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에서 읽는 오늘] 날이 추워진 뒤에야
201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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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에서 읽는 오늘] 날이 추워진 뒤에야
[옛글에서 읽는 오늘] 날이 추워진 뒤에야

경향신문 2013-11-27  ☞  원문보기

추사고택 안채에 중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다.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주관하고 아산도서관에서 마련한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한용운 생가, 김좌진 생가, 윤봉길 의사 기념관 등을 들러 온 마지막 탐방장소였다. 초빙강사인 신정일 선생은 청소년들에게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다.

“무릇 위대한 인물은 모두 고난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여러분도 살다보면 어려운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강철도 담금질을 통해서 강철이 되는 것이죠.”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 청소년들에게 자양분이 되길 기대해본다. 사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삶 이야기는 인생을 살아본 사람일수록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명문 양반가에서 태어나 20대에 북경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국제적 인물. 보통사람과는 다른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그러기에 그의 인생 굴곡은 더욱 실감을 준다.

그는 나이 55세에 제주도 대정현(大靜縣)에 유배되어 가시울타리 집에 갇혀 살았다. 유배생활을 겪으면서 그의 예술세계는 더욱 성숙해졌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가 유배 기간에 완성하여 역관 이상적(李尙迪)에게 준 ‘세한도(歲寒圖)’를 통해 그가 당시 느꼈던 감정을 알 수 있다.

김정희는 세한도를 그린 연유를 적은 글에서 자신을 바다 밖의 초췌하게 말라비틀어진 사람이라 묘사했다. 그런 그에게 이상적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구하기 힘든 책을 먼 타국에서 구해 보내왔다. 이토록 귀한 책이라면 권세가 있거나 이권이 생기는 사람에게 보내야 할 텐데, 바다 멀리 버려진 자신에게 보내왔다. 고마웠다. “권세나 이권 때문에 모인 사람들은 권세나 이권이 떨어지면 교류가 소원하게 된다”고 사마천은 말했는데, 이상적은 권리와 이권으로써 자신을 대하지 않았다.

공자는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은 겨울이 되기 전에도 된 후에도 한결같은데, 공자는 이 사실을 추운 겨울이 된 뒤에 특별히 말했다. “공자가 특별히 말한 것이 시들지 않는 절개와 지조 때문만은 아니다. 날이 추워지자 느끼게 된 바가 있어서였다.” 김정희가 한결같은 이상적에 대해 고맙게 느낀 것도 곤궁해진 자신의 처지 때문이었다.

별스러운 권세나 이권을 누려보지 못해서, 혹은 권세나 이권을 좇는 사람들이 더 잘나가는 세태에 젖어 있어서 김정희의 그런 느낌을 완전히 실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데 날이 추워진 뒤에야 비로소 아는 것이 꼭 그런 것뿐이랴. 날이 점점 더 추워진다.

김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