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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인간과 괴물 - 인간답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 /우응순
201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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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인간과 괴물 - 인간답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 /우응순

 2014년 4월16일 ‘세월호’와 함께 세상이 침묵하였다. 꽃, 젊음, 신뢰, 기쁨이 사라졌다. 불안, 슬픔, 분노가 그 자리를 채웠고, 깊은 바다에 가라앉았다. 이런저런 원인 분석, 전문가 조언이 나왔지만 모두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추가로 공개되는 영상들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 기계인간과 직면한 순간, 전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화에 성공한 선진국이라는 자부심, 세계적 기업의 성공 사례, 찬란한 역사 문화와 한류 등등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인간이 아닌 괴물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이제 너무나도 당연해서 오랫동안 묻지 않았던 질문들을 다시 해야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답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를 살았던 맹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측은지심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無惻隱之心, 非人也)”라고 단언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우물가로 기어가는 어린아이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떨리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서 구하려고 달려가기 마련인데, 이는 어린아이의 부모와 좋은 인연을 맺기 위해서도 주변 사람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옆에 있으면서 구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두려워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해득실을 따지기 이전에 무조건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은 뛰어난 인간만이 실천할 수 있는 대단한 덕목이 아니다. 기계, 괴물이 아닌 인간의 형상을 한 존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감 능력, 선한 마음이다. 내 생명과 함께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도움을 청하는 바로 옆의 생명에게 마음은커녕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핸드폰을 쥔 기계인간, “위험하다! 빨리 나오라!”는 고함조차 칠 줄 모르는 냉혈 괴물로 가득 찬 사회, 국가라면 우리는 어디에서 살든지 항상 안전하지 않다. 불안하다!

측은지심, 공감 능력을 상실한 기계인간, 괴물의 등장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열악한 근무 조건을 언급하면서 긴박한 순간에 주요 결정을 내릴 주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무책임한 이들의 행동을 ‘악의 평범성’으로 보기도 한다. 한국사회의 오래된 안전 불감증, 이해세력의 유착이 근본 원인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안전 매뉴얼이 불충분했고, 사전연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모두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 시간, 그 곳에 인간과 괴물이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되어 인간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아야 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의 탁월한 공감 능력이 생존 확률을 높여왔다고 말한다. 서로 돌보고 배려하는 마음이 맹수 앞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 괴물의 공격에서 더 많은 인간을 살린 것이다. 그런 귀중한 능력이 21세기 인간에게 사라져 가는 것일까? 믿고 싶지 않지만 21세기 인간은 ‘불인인지심’을 버리고 비정하고 차가운 기계가 되어가고 있다. 이 불안한 징후에 직면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아울러 ‘인간의 길’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맹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인간의 선한 의지는 처음에는 미약한 불, 한 줌의 물처럼 보잘 것 없다고 한다. 그러나 꾸준히 노력한다면 거대한 들판을 태울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불, 거대한 바다가 되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경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측은지심’, ‘불인인지심’은 일상적 작은 선의 실천이다. 특별히 위대한 일,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머리 좋고, 많이 배운 사람들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하루하루 좀 더 선하게, 따뜻하게 살고자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아픈 사람을 보면 마음 아파하고, 귀여운 아이가 지나가면 미소 짓고, 다정한 노부부를 보면 부러워하면서… 그렇게 살다가 위험한 순간이 오면 그 마음 그대로 어린아이, 학생을 염려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길을 모색하면 된다. 주위에 힘을 합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체온만큼 타인을 향하는 마음이 따뜻하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 나머지야 어쩌겠는가, 운명을 따를 수밖에.

무거운 마음으로 인간과 괴물에 대한 글을 썼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 180개 도서관에서 진행될 ‘길 위의 인문학’에 거는 기대가 크다.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강연과 답사를 병행하는 ‘길 위의 인문학’이야말로 공감 능력을 확장시킬 좋은 계기이기 때문이다. 열의에 찬 기획자들이 지역 특성에 적합한 주제를 설정하여 최고의 강연자를 섭외하고, 사전 답사를 거친 답사 일정을 짜 놓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하여 마음을 꽉 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가족, 친구, 이웃과 동행한다면 그 기쁨은 수천 배 더할 것이다.

이 시대에 기계, 괴물로 변신하지 않고 계속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길은?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같이 나누고 서로 바라보는 것이다. 간단하고 명료하다. 그러나 기계, 괴물은 못한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삶이다.


글/ 우응순(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