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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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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생원(崔生員)의 ‘주색잡기(周索雜記)’ 1회 /최생원
201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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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생원(崔生員)의 ‘주색잡기(周索雜記)’ 1회 /최생원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오늘부터 매주 사람을 생각해 보는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들을 한편씩 올려 볼까 합니다. 사실 먹고 사는 일에 치여 정신없이 살다보면 마치 경주마와 같이 스스로 눈이 가려진체 앞만 보고 살게 되기 마련인데,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돌아보면 의외로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고 마음에 들어오게 되지요.

 

사실 언제나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들이지만 우리가 보려고 하고 맘을 열어 놓느냐 여부에 따라 그 느낌은 전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감동(感動)...느껴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느낄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마음에 철옹성을 쌓아 놓으면 성벽 위로 쏘아 놓은 화살과 같이 튕겨지기 마련이라서 조금만 마음의 벽을 허물면 시나브로 참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함께 하자고 손짓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모 신문사에 시대를 대표하던 지식인 이규태씨가 칼럼을 연재해 깊은 울림을 준 일이 있었는데, 그와 같이 거창하고 깊이 있는 내용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두루 찾아(周索) 매주 한번 정리해서 적어볼까 합니다.

 

차후 시간이 허락된다면 역사 속의 이야기들로도 눈을 돌려 보다 넓고 깊은 이야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보면서 편안하게 우리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홈페이지를 찾아주신 방문자들께 막간의 여유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20141024일 청계산 자락에서 최생원 배상

 

 

최생원(崔生員)의 ‘주색잡기(周索雜記)’  1회

 

?어느 날 지인과 만나 이야기 하던 중 자신이 몇 일전 겪었던 재밌는 경험담을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이야기인 즉슨...  

 

횟집에서 회랑 술을 먹고 있었더랬단다...그런데 한참 전에 산오징어회를 포장해서 사간 남자가 1시간 뒤에 다시 오더니 '회를 사가서 열어보니 오징어가 움직이질 않더라...이거 산오징어 맞냐? 죽은 오징어 썰어 준거 아니냐? 바꿔줘라' 이랬단다...

 

갑자기 횟집 분위기는 심상찮은 공기가 돌기 시작했고 사장은 '원래 산오징어도 1시간 지나면 당연히 안 움직인다 무슨 소리냐' 라고 하니 그 손님 왈 '아니다 내가 많이 먹어봐서 아는데 항상 움직였다. 당신이 죽은 것을 썰어준거 맞다' 이러더란다.

 

그래서 횟집 사장께서 '그럼 지금 눈앞에서 산오징어를 썰어볼테니 1시간 뒤에 움직이는지 보자 손님 말이 맞으면 내가 공짜로 주겠다' 라고 하고 썰어놓고서는 그 손님과 1시간을 지켜봤단다...

 

1시간 후 손님은 환호성을 질렀단다...살아 움직인거지...

 

그랬더니 사장은 웃으면서 그대로 새 오징어를 포장해 주고, 그 손님은 그것을 받아들고 해맑게 웃으며 짤막하게 '잘 먹겠수다 수고하슈!' 이러고 가더란다.

 

순간 횟집에는 웃음꽃이 터졌고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 됐다는 얘기...

 

곰곰히 생각해봤다. 사실 이 일은 사장의 대처에 따라서 매우 심각한 진상손님 스토리로 변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필자가 만약 사장 같았어도 아마 이 손님의 억지를 경우 없음으로 받아들여서 적당히 힘겨루기를 시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횟집 사장은 나름 화통하게 처리를 했고, 자칫 불쾌하고 기분 나쁠 수 있던 분위기는 굉장히 훈훈하고 유쾌한 분위기로 마무리가 된 것이다.

 

물론 오징어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았으니 그러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이 처세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네 사는 세상 분위기는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나름 느낀 바가 많았다.

 

유쾌한 기분으로 돌아간 손님이 적어도 그 횟집에 대해 나쁜 기억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칭찬을 하고 정감을 느껴 나중에 좋은 기분으로 다시 찾아오는 고객이 되겠지. 우리네 정()이라는 매양 이런 식 아니던가...

 

또 그 광경을 본 많은 다른 손님들도 훈훈한 분위기와 함께 이 유쾌한 사장님이 운영하는 가계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벌써 필자도 한번 찾아가고 싶어졌으니까...하하

 

누구 하나 그 상황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이 없다. 비록 산오징어 몇 마리를 손해 보았지만 이게 과연 손해였을까?

 

사람이 조금만 여유를 가지게 되면 주변사람 모두가 행복해지는 이른바 사람 살맛나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는데, 요즘은 모두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만약 이 사장님이 산오징어 몇 마리의 단가를 생각하고 손해 보지 않으려 지켜내려 했다면 상황은 아마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사람들이 전부 여유가 없다 보니까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며 대하니 어느새 우리 사회는 요즘 야박함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이런 야박함을 혼돈의 시대에 대처하는 똑똑한 처세쯤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최근에는 온통 우울하고 불쾌한 소식과 일들뿐이다. 뭐랄까...사람들 모두 서부의 총잡이처럼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총알을 의식하면서 권총케이스의 단추를 풀러놓고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때문에 모두가 마음이 까칠하고 강팍해져서 얼마든지 훈훈하게 마무리 될 일도 흔히 목소리가 커지고 싸움으로 번져 슬프게 마무리 되는 일이 많다. ‘물러서면 내가 진다. 잘잘못은 상관없다. 무조건 이겨야 살아남는다.’ 모든 사소한 분쟁에서도 아마 사람들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얘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필자는 이런 모든 다툼이 자기 욕심을 주체 하지 못하는 못난 사람들의 경우 없고, 뻔뻔함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얘기를 들으니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답은 나의 여유였다. 누구도 아닌 나. 내가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대하면 세상은 다른 결과로 나에게 돌아오는게 아닐까 싶다. 흡사 뻔뻔함을 가지고 들어온 손님을 마주한 횟집 사장님처럼...(어쩌면 그것이 뻔뻔함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랬을때 나로 말미암아 내 주위 환경은 그야말로 사람 살맛나는 세상으로 바뀔 수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을 이끄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양반들이 좀 이랬으면 좋겠다. 경우 없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자꾸 응석부리고 찡얼댄다는 식으로 몰아가지 말고 아픈 사람 아픈 마음 좀 진심으로 안아주고 다독여주면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교황이 왔을 때 왜들 그렇게 호응했었는지...교황이 별반 특별히 한게 있었나? 그저 아프고 병들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손잡아주고 입 맞춰 주고 위로했을 뿐이다...

 

단지 그런 것으로도 사람들은 엄청난 기쁨을 느끼고 위로를 받았으며, 이것으로 충분히 사람 살 맛 나는 힘을 얻었다. 그런데 우리네 책임 있는 분들은 뭘 그렇게 지키고 싶고 막아내고 싶어서 팍팍하게들 구는지...

 

우리는 요즘 너무 여유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