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링크
본문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 인생이 무엇인지,
남편이 무엇인지, 자식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되는 요즈음,
나는 새로운 눈으로 그의 시를 보게 되었다.
그가 아내와 나눈 사랑 때문이다.
문학사상사(1999.5.20. 초판),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 ②
[다카무라 코다로|<道程(도정)>/ 최태지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 199쪽에서]
道程(도정)
다카무라 코타로(高村光太朗)
내 앞에 길은 없다
내 뒤에 길은 생긴다
아아, 자연이여
아버지여
나를 홀로 서 있게 한 광대한 아버지여
나에게서 눈을 떼지 마시고 지키시라
언제나 아비의 기백을 내게 채우시라
이 머나먼 도정을 위해
이 머나먼 도정을 위해.
* <레몬 哀歌>
그렇게 당신은 레몬을 쥐고 있었어
쓸쓸하고도 하얗고 밝은 병상에서
내 손에서 넘겨 받은 레몬 한 조각을
당신의 단정한 이로 꼭 깨물어
토파즈 색으로 향기가 일고
그 몇 방울 안 되는 레몬 즙에
당신은 의식을 되찾았지
당신의 맑고 파아란 눈이 희미하게 웃고
내 손을 쥔 당신의 손에 힘이 넘쳤어
당신의 목에서는 거친 바람이 불었어도
그처럼 위태한 생의 한가운데에서
치에코는 원래의 치에코가 되어
일생의 사랑을 한 순간에 부어 넣었지
그리고, 한 동안
그 옛날 산정(山頂)에서처럼 심호흡 한번 하고
당신의 기관(機關)은 그대로 멈추었어
사진 앞에 꽂은 벚꽃 그늘에
차갑게 반짝이는 레몬을 한 개 놓아야지